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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언론의 오늘, 그렇다면 내일은?

《자하연잠수함》2호 표지


누가 언론을 장악해서 그런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언론은 죽어가고 있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인터넷 뉴스회사가 범람하는 이 시점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우리 솔직해지자. 요즘에 와서 번창하는 인터넷 뉴스회사들이야 연예인들 사진으로 연명하는 동네라는 사실을 깔끔하게 인정하자. 언론은 단순한 사실전달에 그치지 않는다. 언론은 그 사실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 중에서 제기능을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어떤 때에는 취객이 경찰서에서 벌이는 에피소드를 소재로 한 개그콘서트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 차라리 더 언론의 기능에 가깝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런 대한민국 ‘주류’ 언론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서울대학교의 학내언론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학내언론도 죽어간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하다못해 《대학신문》조차 제대로 챙겨보지 않는다. 논술을 하던 시절에는 틀림없이 중앙일간지 한두 개는 꼬박꼬박 챙겨봤을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는 과제로 내주는 것 이외에는 도무지 읽으려고 들지를 않는다. 그나마 학교의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주는 《대학신문》조차 안 읽으니 엄청난 사건이 터져도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오히려 나중에 아는 경우도 있다. 총학생회 선거 부정의혹도 다른 학교 학생들이 알려줘서 뒤늦게 알고 스누라이프부터 뒤적거리지, 《대학신문》을 찾지는 않는다. 《대학신문》의 경우 보도가 “기계적인 사실보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나마 그 정도라도 읽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시험준비에 급급한 사람들이 널린 것이 대학의 현실이다.  

학내 대표일간지인 《대학신문》이 이 정도이니 다른 언론들의 침체상이야 애써 거론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된다. 《관악》, 《서울대저널》, 《교육저널》... 간간이 보이는 인쇄매체이지만 학생들의 관심은 저조하다. 중앙도서관 터널에 한 무더기씩 쌓아놓아도 오랜 시간 그대로 놓여있고, 인문대학까지 와서도 오랜 시간 남아도는 일이 빈번하다. 해당 인쇄물들을 정독하여 완독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100% 충족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저런 것들이 학내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꽤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만 들어봤어도 그나마 다행, 자보도 안 보고 지나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이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무관심 속에서 언론은 죽어가고 있다. 무관심 속에서 대학사회라는 것조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학사회로까지 담론을 확장하기에는 지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일단 언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인쇄매체의 쇠퇴가 너무나 뚜렷하다. 그렇다면 이를 대체할 영상매체, 즉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웹진’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비단 언론뿐만 아니라 지금 대학사회, 아니 이런 거창한 개념을 떠나서 대학생의 비판적 목소리가 많이 침체된 상황에 대한 고민 속에서 한 가지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띄었다. 《자하연잠수함》은 그런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새로운 언론이다. 웹진은 이전부터 시도가 되었다는데 역시 키보드배틀의 주무대인 스누라이프의 폭풍 속에 가려졌을 것으로 보이며, 현재 《자하연잠수함》도 꽤나 어렵게 어렵게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가 진행중이지만 학생들의 관심은 여전히 저조하다. 창간 이래로 제호상으로는 2호, 실질적으로는 3호가 나온 시점인데 《자하연잠수함》의 히트는 1500에 이제 갓 육박하는 지경이다. 그나마 평균 1호당 500명씩 본다고 가정해도 서울대학교의 인구수를 생각해보면 저조한 것으로 보인다. 《자하연잠수함》뿐만 아니라 《관악》, 《서울대저널》, 《교육저널》 모두 수준이 떨어지는 언론은 아니다. 주제가 어쩌면 다소 고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주제들이 알고보면 당장 서울대학교 학생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공간에 놓인 것들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무관심하다. 대다수 학생들은 안정, 안정, 안정을 찾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턱밑까지 물이 차오른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학내언론에 몸 담고 있는 학생들은 ‘우월해서’ 나선 것이 아니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엄연히 인식의 문제이다. 지적으로는 대체로 비슷비슷할 것이지만, 문제는 자신이 인식한 현실에 대한 도전이다. 그 도전정신이 지금의 대학생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이것이 아마 ‘20대의 보수화’라는 것인가?

지금 이대로라면 학내언론과 대학사회의 내일도 그닥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내일은 어쩌면 더욱 어두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래도 밝아지겠지, 이렇게 애써 자신을 위안하며, 또 친구를 위안하며 내일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운동권’이란 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중에 그 정도로 필수불가결한, 그리고 잉여가 아닌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학내언론의 경우 (《대학신문》의 경우는 확신이 들지 않지만) 그래도 자신의 주변에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회피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맞서보려고 나선 사람들이 꽤 있다. 지금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고, 앞으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외침조차 없다면 상아탑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상아탑의 의미가 상실되는 순간, 지식과 교육은 가장 쓸모없으면서 위험천만한 수단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밝지 않는 내일을 그래도 직면하고 있는 학내언론에게 응원을 보낸다.

* 적절한 주제의 밸리가 없으므로 밸리에 올리지 않는다.

by MadEye | 2009/12/12 20:57 | 시론時論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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